이종찬 광복회장은 1920년대 북한 정권이 수립되기 전에 공산주의는 맥락을 달리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반제국주의 투쟁 또는 일본제국주의와의 싸움이 중요한 목표였을 때”라고 설명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이후 본격적으로 보급된 사회주의 사상은 일본제국주의 식민지라는 특수한 조건 아래서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을 동시에 추구하는 목적을 갖게 됐다.
이에 대해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받아들이거나 활용한 독립운동가들이 상당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국방부 말처럼 홍범도 장군이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 대표대회에 참석해 당시 소련 지도자 레닌에게서 권총과 상금 100루블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 시기는 레닌 러시아 혁명 정부가 세계 약소 민족들에게 많은 지원을 했을 때다. 1912년생인 김일성은 1920년대 10대였다.
당시 홍범도 장군이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작성한 입국서류를 보면 소속 정당도, 소속 노동조합도 ‘없다’고 적혀있고 꿈은 ‘고려 독립’이라고 쓰여있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1920년대 북한 정권이 수립되기 전에 공산주의는 맥락을 달리 봐야 한다는 이종찬 광복회장의 말은 ‘사실’로 판정한다.
출처 : 이데일리, 20년대 공산당은 북한 수립 공산당과 다르게 봐야 한다? [SNU팩트체크], (2023.9.8.)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2728966635738152&mediaCodeNo=257&OutLnkChk=Y
'홍범도 장군 지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정희 정부, '홍범도 위패' 국립묘지에 모셨다 (0) | 2023.09.08 |
---|---|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쟁 매뉴얼: 12가지의 개소리에 대하여 (0) | 2023.09.08 |
“홍 장군이 공산주의자? 그 시대 맥락·상황 봐야” (0) | 2023.09.08 |
육사 내 홍범도 흉상 이전 논의기구에 독립운동사 전공 역사학자 없어 (0) | 2023.09.07 |
육군사관학교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내쫓고 친일파 백선엽의 동상을 세우기로 계획했다 (0) | 2023.09.07 |